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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_볼프강 바인가르트

by day day day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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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wiss Poster Exhibition poster

볼프강 바인가르트는 1941년 독일 콘스턴스에서 태어나 스위스 바젤에서 레터링교육을 받았다. 1968년 바인가르트는 아르민 호프만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바젤 미술 공예학교의 교수가 되었는데 그때 당시 타이포그래피는 절대적인 질서와 명료함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바인가르트는 이러한 질서 정연하게 나열되었던 기존의 기능주의 타이포그래피를 해체하고 나아가 조형요소에 충실한 새로운 형식의 타이포그래피를 만들어 냈다. 현재 그는 스위스 타이포그래피를 정리 및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활자적 공간의 해체'라는 독특한 실험으로 타이포그래피의 정의를 새로 내린 인물이다. 1968년 바젤스쿨 교수로 부임한 이래 지금까지 그의 실험정신과 교육에 대한 열정은 세계 곳곳의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를 찾게 하고 있다.

 

1. 주요활동

바인 가르트는 에밀 루더, 아르민 호프만, 뮐러 브로크만 등의 영향하에서 작품활동을 했었다. 그러나 교수가 되고부터 그는 자신의 스승들과는 다른 교육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절대적인 질서와 명료성에 의한 타이포그래피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여 그간 인쇄술을 지배해 왔다고 느껴왔던 스위스 스쿨의 엄격한 형식으로부터 자신과 학생들을 벗어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너무 세련되어 버린 국제적인 양식과 또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새로운 인쇄술이 필요할 때라고 직감하여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ㄱ그는 정상적인 시각을 버리고 넓은 자간을 사용했고, 장평을 바꾸었으며, 문단 첫 단락의 들여 쓰기를 버렸고, 직사각형 형태의 헤드라인을 바꾸었고, 밝은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실습행위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매우 성행하는 '뉴웨이브'의 시초이다. 그는 1972년 1010월 미국으로 건너가 많은 디자인 학교에서 강연을 가졌다. 산세리프와 그리드 구조의 기업 아이덴티티 시스템이 활기를 쳤던 디자인 전문분야에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바인가르트는 자신의 작업을 타이포그래피적 커뮤니케이션의 변수를 확장하는 시도로 생각하여 그의 뉴 웨이브가 스타일화 돼 가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모방되었고, 특히 디자인 교육에서는 더욱이 그러하여 타이포그래피적 접근 방식의 모태가 되었다. 그는 19681968년부터 바젤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오면서 최근 30년간은 유럽, 북남미, 아시아,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 등지에서도 강의를 해왔으며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의 완성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 중 일부는 박물관 및 개인 갤러리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그는 베른에 있는 스위스 연방정부 내무성으로부터 디자인상을 받은 바가 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My way to typography, 2001>, <How can one make Swiss Typography?, 1987>, <My typpgraphy instruction at Bassel school of design, 1985>, <Idea special issus typography today,1960>등이 있다

2. 작품의 특징

바인가르트는 그래픽디자인에 있어서 구텐베르크식 접근방법을 옹호했다. 다시 말해서 디자이너는 자신의 시각체계를 확실히 구현하려는 초창기의 활판인쇄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디자인의 모든 과정(콘셉트설정,(컨셉설정, 조판, 교정, 인쇄등)인쇄 등)에 통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인쇄술이 더욱 생생해지게 하고 그래픽 디자인 속에 인쇄술을 융화시키는 것이었다. 줄기찬 실험가였던 바인가르트는 기법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이때 껏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작업하였다.

 

1)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바람

1968년부터 1974년까지 바인가르트는 납 활자와 활판 인쇄 설비로 작업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수업과 개인적인 작업에서 스위스 거장들과 그 후계자들의 학구적인 스타일 속에서 더욱 확고해진 그들의 규칙 혹은 전제조건들에 왜 문단은 들여 쓰기로 표시되어야만 하는가? 다른 방법으로 본문을 시각적으로 나누는 방법은 없을까? 왜 낱말은 중간에 굵기의 변화를 주지 않는가?’ 등의 의문을 가짐으로써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기능적이고 질서 정연한 타이포그래피에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었다.. 그는 자신의 질문을 통하여 그동안의 규칙들을 과감하게 다른 방법으로 해체시키고, 헤드라인 안의 중요한 단어를 강조하기 위하여 자주 문자를 두꺼운 검정핵 사각형 안의 흰색으로 만들었다. 그에 의하여 유서 깊은 타이포그래피의 전통과 시각적 언어체계가 재고되었다. 또한 1960년대 금속에서 사진 제판으로 인쇄방식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좁은 자간에 대한 확고함으로 간과되었던 넓은 자간의 문자들이 탐구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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